|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一切衆生 於生死中 無有多聞 不能了知 此一切法 一切 衆生 {於}生死 中 多聞 無{有} {此} 一切 法 了知 不()能 ‘일체 중생은 생사의 가운데 있어 많이 들음이 없으니, 이 일체 법을 아는 것을 능히 못하는 이라서, 我當發意 持多聞藏 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諸衆生 說眞實法 我 當 發意 多聞藏 持 阿耨多羅三藐三菩提 證 諸 衆生 爲三 眞實法 說 [화엄경소 권35:9] 나는 마땅히 發意하여서 多聞藏을 지녀서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증득하여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진실법을 말하겠다’ 하는 것을, 是名 菩薩摩訶薩 第五多聞藏 {是} 名 菩薩摩訶薩 五 第 多聞藏 이를 일컬어 보살마하살의 다섯 번째의 多聞藏이라 하는 것이다 佛子 何等 爲菩薩摩訶薩施藏 무릇 받는 바의 것이면 다 또 이와 같이 하며 若自食時 作是念言 若 自 食 時 {是} 念言 作 만약 스스로 먹을 때에는 이 생각하는 것을 하기를, 我身中有 八萬戶蟲 依於我住 我身充樂 彼亦充樂 我身飢苦 彼亦飢苦 我 身 中 八萬戶蟲 有 {於}我 依 住 我 身弋 充樂 彼 亦 充樂 我 身弋 飢苦 彼 亦 飢苦 [화엄경소 권35:9] ‘내 몸 가운데에 八萬 戶蟲이 있어 나를 의지하여서 住한 것이라서 내 몸이 充樂하여야 그들도 또한 充樂할 것이며 내 몸이 飢苦한다면 그들도 또한 飢苦할 것이다 我今受此 所有飲食 願令衆生 普得充飽 我 今 {此} 有 所 飮食 受 願 衆生 普 充飽 得 令 내가 지금 이 있는 바의 飲食을 받는 것은 원컨대 衆生을 널리 充飽하는 것을 얻게 할 것이다’ 하여 爲施彼故 而自食之 不貪其味 만약 스스로 먹을 때에는 이 생각하는 것을 하기를, 我身中有 八萬戶蟲 依於我住 我身充樂 彼亦充樂 我身飢苦 彼亦飢苦 我 身 中 八萬戶蟲 有 {於}我 依 住 我 身弋 充樂 彼 亦 充樂 我 身弋 飢苦 彼 亦 飢苦 ‘내 몸 가운데에 八萬 戶蟲이 있어 나를 의지하여서 住한 것이라서 내 몸이 充樂하여야 그들도 또한 充樂할 것이며 내 몸이 飢苦한다면 그들도 또한 飢苦할 것이다 我今受此 所有飲食 願令衆生 普得充飽 我 今 {此} 有 所 飮食 受 願 衆生 普 充飽 得 令 [화엄경소 권35:9] 내가 지금 이 있는 바의 飲食을 받는 것은 원컨대 衆生을 널리 充飽하는 것을 얻게 할 것이다’ 하여 爲施彼故 而自食之 不貪其味 彼 施{爲} 故 而 自 {之} 食 其 味 貪 不 그들에게 보시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그러므로(그 이유로만) 스스로 이것을 먹는 것이지 그 맛에 貪하지 않으며 復作是念 또 이 생각을 하기를, 我於長夜 愛着其身 欲令充飽 而受飲食 今以此食 惠施衆生 我 {於}長夜 其 身 愛著 充飽 令{欲} 而 飮食 受 今 {此} 食 以 衆生 惠施 ‘나는 오랜 세월에 있어 내 몸을 愛着하여서 充飽하게 하려고 飲食을 받은 것이라서 이제는 이 음식으로써 衆生에게 惠施하고서 願我於身 永斷貪着 願 我 {於}身 永 貪著 斷 [화엄경소 권35:9] 원컨대 나는 몸에서 영원히 貪着을 끊겠다’ 하는 것을 是名分減施 {是} 名 分減施 이를 일컬어 分減施라 하는 것이다 云何 爲菩薩竭盡施 보살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我無始已來 以飢餓故 喪身無數 我 無始 已來 飢餓 以三 故 身 喪 數 無 ‘나는 아득한 옛날부터 이제까지 굶주림을 말미암은 까닭으로 몸을 망치되 수없이 하였으나 未曾得有 如毫末許 饒益衆生 而獲善利 曾 得 毫末許 如 衆生 饒益 而 獲 善利 {有} 未 [화엄경소 권35:10] 조금도 능히 털끝만큼 같은 것도 중생을 이롭게 하여 얻은 善利를 가지지 않았다 今我亦當 同於往昔 而捨其命 今 我 亦 當 {於}往昔 同 而 其 命 捨 지금 나는 또한 반드시 옛날과 같아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이라서 是故應爲 饒益衆生 隨其所有 一切皆捨 지금 나는 또한 반드시 옛날과 같아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이라서 是故應爲 饒益衆生 隨其所有 一切皆捨 {是} 故 衆生 饒益{爲} 其 有 所 隨 一切 皆 捨 이 까닭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자신의 있는 바를 따라 모두 다 버리되 乃至盡命 亦無所恡 乃 盡命 至 亦 恡 所 無應 [화엄경소 권35:10] 그런 것들(에서) 목숨을 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하여도 또한 아끼는 바 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한다 是名竭盡施 {是} 名 竭盡施 이를 일컬어 竭盡施라 하는 것이다 云何 爲菩薩內施 오직 慈念하는 것을 보아서 나에게 보시하소서” 했을 때에 爾時菩薩 作是念言 爾 時 菩薩 {是} 念言 作 그러한 때에 菩薩은 이 생각하는 것을 하기를, 今我此身 後當必死 無一利益 今 我 {此} 身 後 當必 死 一 利益 無 [화엄경소 권35:11] ‘지금 나의 이 몸은 뒤에라도 필히 죽는다면 한 이익될 만큼도 없을 것이다 宜時疾捨 以濟衆生 宜 時 疾 捨 以 衆生 濟 마땅한 때에 빨리 버려서 이로써 중생을 구제하겠도다’ 하며 念巳施之 心無所悔 ‘나의 몸이니 財寶니 및 王位니 하는 것은 다 이는 無常이라서 敗壞되는 法인데 我今盛壯 富有天下 乞者現前 我 今 盛壯 富 天下 {有} 乞者 現前 나는 지금은 건장하며 부유함에 있어서는 천하를 가졌으며 乞者가 나타나며 하니 當以不堅 而求堅法 當 不堅 以 而 堅 法 求 [화엄경소 권35:12] 마땅히 견고하지 못한 것으로써 견고한 법을 구하겠다’ 하며 作是念已 即便施之 {是} 念 作 已 卽 便 {之} 施 이 생각을 함을 이미 하고서는 곧바로 이를 보시하며 乃至以身 恭勤作役 心無所悔 혹은 국토를 구하기도 하며 혹은 처자를 구하기도 하며 혹은 손·발이니 피·살이니 심장·허파니 머리·눈이니 골수·뇌니 하는 것을 구하기도 하거늘 菩薩是時 心作是念 菩薩 是 時 心 {是} 念 作 菩薩은 이러한 때에 마음에 이 생각을 하기를, 一切恩愛 會當別離 而於衆生 無所饒益 一切 恩愛 會恨 當 別離 而 {於}衆生 饒益 所 無 [화엄경소 권35:12] ‘모든 은혜와 애정도 만나나 (만남을) 하고서는 반드시 이별할 것이지만, 중생에게는 이롭게 할 바가 없을 것이다 我今爲欲 永捨貪愛 以此一切 必離散物 滿衆生願 我 今 永 貪愛 捨{爲欲} {此} 一切 必 離散 物 以 衆生 願 滿 나는 이제는 영원히 탐욕과 애정을 버리고자, 이 일체 반드시 이별할 것으로써 중생의 원을 채우리라’ 하며, 作是念已 悉皆施與 心無悔恨 菩薩은 이러한 때에 마음에 이 생각을 하기를, 一切恩愛 會當別離 而於衆生 無所饒益 一切 恩愛 會恨 當 別離 而 {於}衆生 饒益 所 無 ‘모든 은혜와 애정도 만나나 (만남을) 하고서는 반드시 이별할 것이지만, 중생에게는 이롭게 할 바가 없을 것이다 我今爲欲 永捨貪愛 以此一切 必離散物 滿衆生願 我 今 永 貪愛 捨{爲欲} {此} 一切 必 離散 物 以 衆生 願 滿 [화엄경소 권35:12] 나는 이제는 영원히 탐욕과 애정을 버리고자, 이 일체 반드시 이별할 것으로써 중생의 원을 채우리라’ 하며, 作是念已 悉皆施與 心無悔恨 {是} 念 作 已 悉 皆 施與 心 悔恨 無 이 생각을 함을 이미 하고서는 다 모두 베풀어 주되 마음에 후회 없이 하며, 亦不於衆生 而生厭賤 다만 저 경계로 말미암아 중생을 섭취하고자 (이들을) 위하여 진실을 말하여서 불법을 성숙하게 할 것이며, 然此法者 非有處所 非無處所 然 {此} 法{者} 處所 有 非 處所 無 非 그러나 이 법은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며, 처소(가) 없는 것이 아니며, 非內非外 非近非遠 內 非 外 非 近 非 遠 非 [화엄경소 권35:14] 안 아니며, 밖 아니며, 가까움 아니며, 멂 아니라 하며, 復作是念 復 {是} 念 作 또 이런 생각을 하기를, 若法非有 不可不捨 그것으로써 저들에게 보시하여서 그 願을 充滿하게 해야 할 것이며 如我所作 我 作 所 如 내가 지은 바와 같이 以此開導 一切衆生 令於身心 不生貪愛 悉得成就 淸淨智身 此 以 一切 衆生 開導 {於}身心 貪愛 生 不 令 悉 得 淸淨 智身 成就 [화엄경소 권35:16] 이것을 써서 一切 衆生을 개도하여서 身心에 貪愛를 내지 않게 하여 모두 능히 淸淨智身을 성취하게 하겠다’ 하는 것을, 是名究竟施 {是} 名 究竟施 이를 일컬어 究竟施이라 하는 것이다 是爲菩薩摩訶薩 第六施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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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니 非謂二諦一 非二何可得 謂 非 二諦 一 二 非 何 得可 말하는 것 아니다, 二諦가 하나이다 한다 둘 아닌 것이라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까닭으로 於解常自一 於諦常自二 {於}解 常 自 一 {於}諦 常 自 二 [구역인왕경 권상:15] 解에 항상 스스로 하나이며 諦에 항상 스스로 둘인 것이다 하여 通達此無二 眞入第一義 {此} 無二 通達 眞 第一義 入 이 둘 없는 것을 通達하신 것을 참으로 第一義에 들어가신 것이라고 한다 世諦幻化起 幻化가 幻化의 중생을 보고 일컬어 幻諦라고 하며 幻化見幻化 衆生名幻諦 幻化 幻化 見 衆生 名 幻諦 幻化에서 幻化를 보고 중생이 하는 것을 일컬어 幻諦라고 하며 幻師見幻法 諦實卽皆無 名爲諸佛觀 幻師 幻法 見 諦 實 卽 皆 無 名 {爲}諸佛 觀 [구역인왕경 권상:15] 幻師가 幻法을 보듯이 諦實로 하니 곧 모두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일컬어 모든 佛의 觀이라고 하며 菩薩觀亦然 菩薩 觀 亦 然 菩薩의 觀도 또한 그러하다 大王 菩薩摩訶薩 於第一義中 常照二諦 化衆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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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항상 방편으로 선법을 닦을 때의 할 일이니, 謂我於諸法常方便修爲依止故 謂 我 {於}諸 法 常 方便 修 依止 {爲} 故 즉 “나는 모든 법에 대해 항상 방편으로 닦는 것을 의지로 삼은 까닭으로, 當能制伏隨愛味樂一切心識 又能如實覺了苦性 當 能 隨 樂 愛味 一切 心識 制伏 又 能 實 如 苦性 覺了 [유가사지론 권20:8] 반드시 능히 좇아 즐거움을 애미하는 일체의 심식(心識)을 굴복시키고, 또 능히 실상과 같이 괴로움의 본성苦性을 깨닫고 할 것이다” 할 것이며, 二 於無戲論涅槃信解愛樂所作 二 {於}无戱論涅槃 信解愛樂 所作 둘째는 무희론열반에 대해 신해하고 애락할 때의 할 일이니, 謂我當於無戲論涅槃 心無退轉 둘째는 무희론열반에 대해 신해하고 애락할 때의 할 일이니, 謂我當於無戲論涅槃 心無退轉 謂 我 當 {於}无戱論涅槃 心 退轉 无 즉 “나는 반드시 무희론열반에 대해 마음에서 물러남退轉이 없어, 不生憂慮 謂我我今者何所在耶 憂慮 生 謂 我 我 今{者} 何 所 在{耶} 不 [유가사지론 권20:8] 우려를 내어서 말하기를 ‘나의 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이다” 할 것이며, 三 於時時中遊行聚落乞食所作 三 {於}時時 中 聚落 遊行 乞食 所作 셋째는 때때로 마을에 다녀서 걸식할 때의 할 일이니, 謂我乞食受用爲因 身得久住有力調適 常能方便修諸善法 우려를 내어서 말하기를 ‘나의 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이다” 할 것이며, 三 於時時中遊行聚落乞食所作 三 {於}時時 中 聚落 遊行 乞食 所作 셋째는 때때로 마을에 다녀서 걸식할 때의 할 일이니, 謂我乞食受用爲因 身得久住有力調適 常能方便修諸善法 謂 我 乞食受用 因 {爲} 身 得 久住 有力 調適 常 能 方便 諸 善法 修 [유가사지론 권20:8] 즉, “나는 음식을 구걸하여 수용하는 것을 인으로 삼아 몸이 능히 오래 머무르고, 힘이 있고, 조화롭고調適 하여 항상 능히 방편으로 여러 선법을 닦을 것이다” 할 것이며, 四 於遠離處安住所作 四 {於}遠離處 安住 所作 넷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안히 머무를 때의 할 일이니, 謂若愛樂與諸在家及出家衆雜居住者 즉, “만일 애락하여서 여러 재가와 출가와의 무리와 더불어 섞여 거주하는 경우에는(/거주하는 자는), 便有種種世間相應見聞受用諸散亂事 便 種種 世間 相應 見聞 受用 諸 散亂事 {有} 곧 갖가지 세간과 상응하는, 견문을 수용하는 여러 산란한 일을 지닐 것이라, 勿我於彼正審觀察心一境位 當作障礙 我 {於}彼 正審觀察 心一境位 當 障㝵 作 勿 [유가사지론 권20:9] 나로 하여금 저 바로 살피고 관찰하는 심일경위에서 반드시 장애를 짓게 하지 말 일이다” 할 것이다 於此四種所作事中 當知有四所對治法 {於}此 四種 所作事 中 當 知 四 所對治 法 有 이 네 가지 할 일 가운데,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소대치의 법이 있는 것이다 於初所作 有嬾墮懈怠 이와 같은 여러 수번뇌를 현행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서이며, 마음을 단련하고자 하는 까닭에서이며, 마음을 조화롭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彼作是思 彼 是 思 作 그는 이 생각함을 짓기를, 我應當證心自在性 定自在性 我 當 心自在性 定自在性 證應 [유가사지론 권20:16] ‘나는 반드시 심자재성이니 정자재성이니 하는 것을 증득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여 於四處所 以二十二相應善觀察 {於}四處所 二十二相 {以} 善 觀察應 네 처소에서 스물두 상으로써 잘 관찰해야 한다 謂自誓受下劣形相 威儀 衆具 또한 나는 이와 같이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 격려하고 하여 맹세코 세 처소三處를 받았는데(/받았으나), 猶爲四苦常所隨逐 未得解脫 猶 四苦 常 隨逐 所 爲 得 解脫 未 오히려(/여전히) 네 괴로움이 항상 뒤따르는 바를 입어, 능히 해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我今不應爲苦隨逐 未於勝定獲得自在 中路止息 或復退屈 我 今 苦 隨逐 爲 {於}勝定 自在 獲得 未 中路 止息 或 復 退屈應 不 [유가사지론 권20:18] 나는 이제, 괴로움이 뒤따르는 바를 입어 뛰어난 정에서 자재하는 것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에 중도에서 그만두고 혹은 다시 뒤로 물러나고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여 如是精勤如理作意 乃得名爲出家之想 及沙門想 是 如 精勤 如理作意 乃 得 名 {爲}出家之想 及 沙門想 이와 같이 부지런히 이치에 맞게 작의하는 것을, 이를 얻음을 일컬어 출가지상이라 하며 사문상이라 한다 彼於圓滿修多方便以爲依止 由世間道 證得三摩地圓滿故 또 다시 그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고 하며, 又愛慢見無明疑惑 種種定中諸隨煩惱 不復現行 善守念住 又 愛 慢 見 无明 疑惑 種種 定 中 諸 隨煩惱 復 現行 不 善 念住 守 또 애와 만과 견과 무명과 의혹과의 갖가지 정의 가운데 있는 여러 수번뇌를 다시 현행하지 않아서(/않도록 하여서), 잘 염주를 지키며(/염주를 잘 지키며), 又非證得勝奢摩他 卽以如是奢摩他故 謂己一切所作已辦 又 勝奢摩他 證得 卽 是 如 奢摩他 {以} 故 己 謂 一切 所作 已辦 非 [유가사지론 권20:19] 또 뛰어난 사마타를 증득한 까닭으로, 곧 이와 같은 사마타를 말미암은 까닭으로 자기를 일러서 “일체 할 일을 이미 해낸 것이다” 하지 않고, 亦不向他說己所證 亦 他 向 己 證 所 說 不 또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자기가 증득한 바를 말하지 않고 하며 할 것이라, 彼由如是樂斷樂修 心無貪恚 正念現前 離增上慢 의복에 대해 (마땅한 것을 좇아) 획득한 것을 만족한 것과 같이, 나머지 음식이니 와구니 하는 것들에 대해 기쁘게 만족하는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한 그러한 것이다 又正了知而爲受用 又 正 了知 而 {爲}受用 또 올바로 알아서 수용하는 데에, 謂如是等諸資生具 但爲治身 令不敗壞 暫止饑渴 攝受梵行 謂 是 如 等 諸 資生具 但 身 治 敗壞 不{令} 暫 飢渴 止 梵行 攝受{爲} [유가사지론 권20:19] 말하자면 ‘이와 같은 등의 여러 생활도구는 단지 몸을 다스려서 무너지지 않게 하고, 잠시 굶주림을 멈추어서 범행을 섭수하고 하기 위한 것이구나’ 하며, 廣說乃至於食知量 廣 說 乃 至 {於}食 知量 자세히 말하면,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 양을 안다 彼由如是正修行故 於三摩地獲得自在 말하자면 있다 여래의 여러 제자 무리가, 이미 잘 세간의 청정을 닦아 익혀서(/닦아 익힌 이들이), 知長夜中 由妙五欲積集其心 長夜 中 妙 五欲 其 心 積集 由 ‘긴 밤 가운데 묘한 다섯 욕이 그 마음에 쌓인 것으로 말미암아, 食所持故長養其心 於彼諸欲生愛樂故 食 持 所 故 其 心 長養 {於}彼 諸 欲 愛樂 生 知 故 [유가사지론 권20:20] 음식이 지탱한 바로 인하여 그 마음을 장양하여서 저 여러 욕에 대해 애락을 내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아는 까닭으로, 而於諸欲 深見過患 於上勝境 見寂靜德 而 {於}諸 欲 深 過患 見 {於}上勝 境 寂靜 德 見 여러 욕에서 깊이 과환을 보고, 훌륭하고 뛰어난 경계에서 고요한 덕을 보고 할 이들이 彼於戲論界易可安住 謂於世間一切種清淨 5그는 이러한 때에 능히 현관을 막는 아만의 어지러운 마음을 곧 길이 끊어없애고 심일경성을 증득한 까닭으로, 依記 依記 기(記)에 의거하였다 便自思惟 我已證得心一境性 如實了知 便 自 思惟 我 已 心一境性 證得 實 如 了知 [유가사지론 권20:23] 6곧 스스로 사유하기를 ‘나는 이미 심일경성을 증득한 것이다’ 하여 실상과 같이 안다 當知是名由通達作意故 入諦現觀 當 知 是 名 通達作意 由 故 諦現觀 入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컬어 통달작의로 말미암은 까닭으로 제현관에 드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又若先以世間道 得三摩地 亦得圓滿 亦得自在 사마타니 비발사나니 하는 것을 의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시 네 가지의 장애가 있는 것이다 一 毘鉢舍那支不隨順性 二 奢摩他支不隨順性 三 彼俱品念不隨順性 四 處所不隨順性 一 毘鉢舍那支 不隨順 性 二 奢摩他支 不隨順 性 三 彼 俱品念 不隨順 性 四 處所 不隨順 性 첫째는 비발사나지에 수순하지 않는 성품性과, 둘째는 사마타지에 수순하지 않는 성품과, 셋째는 저 모든 품의 염에 수순하지 않는 성품과, 넷째는 처소에 수순하지 않는 성품과이다 若謂己聰明 而生高舉 不從他聞 順觀正法 若 己 謂 聰明 而 高擧 生 他 從 觀 順 正法 聞 不 [유가사지론 권20:26] 1만약 자기를 일러서 “총명한 이로다” 하여 고거를 내어서, 다른 사람을 좇아 관(觀)에 수순順하는 정법을 듣지 않는 것을, 是名毘鉢舍那支不隨順性 是 名 毘鉢舍那支 不隨順 性 이를 일컬어 비발사나지에 수순하지 않는 성품이라 하며, 若不安靜身語意行 躁動輕舉 數犯尸羅 生憂悔等 乃至不得心善安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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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大甚深智를 충족하는 것이 波羅蜜의 뜻이며 行非行法 心不執著 是波羅蜜義 行非行 法 心 執著 不 是 波羅蜜義 3行非行法을 마음에 執著하지 않는 것이 波羅蜜의 뜻이며 生死過失 涅槃功德 正覺正觀 是波羅蜜義 生死 過失 (涅槃 功)德 正覺 正觀 是 波羅蜜義 [합부금광명경 권3:5] 4生死는 過失이며 涅槃은 功德이라 하여 바로 깨닫고 바로 보는 것이 波羅蜜의 뜻이며 愚人智人 皆悉攝受 是波羅蜜義 愚人 智人 (皆 悉 攝)受 是 波羅蜜義 5愚人이니 智人이니 하는 이를 다 攝受하는 것이 波羅蜜의 뜻이며 能現種種 珍妙法寶 是波羅蜜義 無上微妙法輪을 굴리시는 것을 보살은 다 볼 수 있다 善男子 云何初地 而名歡喜 善男子 云何 (初地) 而 名 歡喜 선남자야, 어찌하여 初地를 일컬어 歡喜라고 하는가 하면 得出世心 昔所未得 而今始得 大事大用 如意所願 悉皆成就 出世心 得 昔 得 未 所 而 今 始 得 大事 大用 意 願 所 如 悉 皆 成就 [합부금광명경 권3:6] 1出世心을 얻으며, 예전에 얻지 못한 바인 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얻으며, 大事이니 大用이니 하는 것을 뜻에 원하는 대로 다 성취하며 하여, 大歡喜慶樂故 是故初地 名爲歡喜地 大 歡喜 慶樂 故 是 故 初地 名 {爲}歡喜地 크게 歡喜하여 慶樂하는 까닭으로 初地를 일컬어 歡喜地라고 하는 것이며, 一切微細之罪 破戒過失 皆淸淨故 능히 한 法만큼도 生하지 않고 또 한 法만큼도 滅하지 않고 하시어, 平等見이신 것을 말미암은 까닭으로 世尊은 無上處에 이르시며, 不損生死故 願尊證涅槃 過二法見故 是故證寂靜 生死 損 不 故 願 尊 涅槃 證 二法見 過 故 是 故 寂靜 證 生死를 덜지 않으신 까닭으로 願하여서 世尊은 涅槃을 證하시어, 두 法의 견해를 넘으신 까닭으로 이런 까닭으로 寂靜을 證하시며, 世尊智一味 淨品不淨品 不分別界故 獲無上淸淨 世尊 智 一味 淨品 不淨品 界 分別 不 故 無上淸淨 獲 [합부금광명경 권3:13] 世尊의 智慧는 一味이시어 淨品이니 不淨品이니 하는 것에 대하여 境界를 分別하지 않으시는 까닭으로 無上淸淨을 얻으셨습니다 世尊無邊身 不說一言字 一切弟子衆 飽滿法雨故 世尊 無邊身 一 言字 說 不 一切 弟子衆 法雨 飽滿 故 世尊의 無邊身은 하나의 言字만큼도 說하지 않으시나, 모든 弟子들에게 法雨를 飽滿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하시며, 衆生相思惟 一切種皆無 困苦諸衆生 世尊普救濟 世尊의 智慧는 一味이시어 淨品이니 不淨品이니 하는 것에 대하여 境界를 分別하지 않으시는 까닭으로 無上淸淨을 얻으셨습니다 世尊無邊身 不說一言字 一切弟子衆 飽滿法雨故 世尊 無邊身 一 言字 說 不 一切 弟子衆 法雨 飽滿 故 世尊의 無邊身은 하나의 言字만큼도 說하지 않으시나, 모든 弟子들에게 法雨를 飽滿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하시며, 衆生相思惟 一切種皆無 困苦諸衆生 世尊普救濟 衆生 相 思惟 一切 種 皆 無 困苦 諸 衆生 世尊 普 救濟 [합부금광명경 권3:13] 衆生의 相을 思惟하시되 一切 種 모두 없는 것이다 하시나, 困苦한 모든 중생에게 世尊이시라야 널리 救濟하시며 苦樂常無常 有我無我等 如是衆多義 世尊慧無著 苦 樂 常 無常 有我 無我 等 是 如 衆多 義 世尊 慧 著 無 苦니 樂이니 常이니 無常이니 有我니 無我니 하는, 이와 같이 많은 뜻에 世尊의 智慧는 執着함이 없으시며 世閒不一異 譬如空谷響 不度亦不滅 唯佛能了知 苦니 樂이니 常이니 無常이니 有我니 無我니 하는, 이와 같이 많은 뜻에 世尊의 智慧는 執着함이 없으시며 世閒不一異 譬如空谷響 不度亦不滅 唯佛能了知 世間 一 異 不 譬 空谷 響 如 不度 亦 不滅 唯 佛 能 了知 世間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것이, 비유하면 空谷의 메아리 같아, 不度하고 또한 不滅하고 하는 것을 오직 부처님이시라야 능히 了知하시며, 法界無分別 是故無異乘 爲度衆生故 分別三乘說 法界 分別 無 是 故 異 乘 無 衆生 度{爲} 故 分別 三乘 說 [합부금광명경 권3:13] 法界는 分別이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다른 乘 없거늘, 衆生을 濟度하고자 하시는 까닭으로 分別하여 三乘을 說하셨습니다” 하셨다 是時 大自在梵王 於大會中 從座而起 是 時 大自在梵王 {於}大會 中 座 從 而 起 이 때 大自在梵王은 大會 가운데에 계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 頂禮佛足 而白佛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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